중처법 1호, 삼표 회장 ‘무죄’ 선고…“중처법상 경영책임자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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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명의 사망자가 나온 삼표산업 중대재해 사건에서 법원이 정도원 삼표그룹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은 삼표산업 대표이사와 최고안전책임자(CSO)에게도 무죄를 선고한 반면, 현장 실무자 네 명에게는 유죄를 선고했다.
12일 노동법률 취재에 따르면 의정부지방법원 형사3단독 이은영 판사는 지난 10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정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과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이종선 삼표산업 전(前) 대표와 CSO A 씨에게도 무죄가 선고됐다.
반면 현장 담당자인 삼표산업 양주사업소 소장 B 씨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현장 담당자 C 씨는 금고 1년에 집행유예 2년, 관리차장 D 씨와 발파반장 E 씨는 각각 금고 1년 6개월과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삼표산업 법인은 벌금 1억 원을 선고받았다.
법원 "정 회장 경영책임자 아냐…중처법 무죄"
2022년 1월 경기도 양주시 삼표산업 양주사업소 채석장에서 20m 높이의 토사가 무너져 일하던 근로자 세 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틀 후 발생해 검찰은 정 회장을 중대재해처벌법상 ▲유해ㆍ위험 요인 등 확인ㆍ개선 절차 마련 의무 ▲중대산업재해 대비 매뉴얼 마련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혐의로 기소했다.
법원은 정 회장이 삼표산업의 경영책임자가 아니기 때문에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 판사는 "정 회장이 삼표그룹 회장으로 계열사인 삼표산업의 경영 보고를 받은 사실은 인정되지만 경영상 주요 사항을 보고받지 않았고, 안전보건상 경영 결정을 내리지는 않았다"며 "정 회장이 담당 임원을 통해 삼표산업에 일정 지시를 내렸지만 이것만으로 정 회장이 삼표산업을 총괄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 회장의 지시로 인해 이 전 대표가 중대재해처벌법상 의무 이행이 현저히 곤란해지거나 불가능해진 사정이 없다"며 "정 회장이 삼표산업의 경영책임자에 해당하지 않아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이 전 대표와 CSO A 씨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도 인정하지 않았다. 이 판사는 "사고가 발생한 양주사업소는 B 씨가 총괄했고, 채석량을 늘리기 위한 채석장 변경 신고도 B 씨가 했다"며 "이 전 대표가 2021년 취임한 뒤 관리하는 사업장이 10개에 달해 이 전 대표에게 양주사업소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CSO A 씨가 삼표산업의 안전 관련 사항에 대해 전결권을 가지고 있었지만 사고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틀 후에 일어났고 삼표산업 안전보건관리 조직이 구성된 지 1개월 만에 사고가 발생해 업무상 주의 의무를 위반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법원은 현장 실무자들의 의무 위반은 모두 인정했다. 이 판사는 현장 소장 B 씨와 담당자 C 씨의 위험성 평가 의무 위반을 인정했다. "현장 소장 B 씨는 위험성 평가를 실시하고 유해ㆍ위험 방지를 위한 조치를 해야 하지만 이를 소홀히 해 사고 발생에 책임이 있다"며 "현장 담당자 C 씨도 B 씨에게 위험성 평가 시행을 건의하고 적정 조치가 이루어졌는지 확인할 의무가 있었으나 이행하지 않아 사고 발생에 책임이 있다"고 했다.
법원은 위험성 평가 담당자인 현장 관리차장 C 씨와 발파반장 D 씨의 책임도 인정했다. 이 판사는 "이들은 위험성 평가 담당자로 사업장의 유해ㆍ위험 요인을 확인하고 발파 진동을 고려한 안전조치의무가 있었으나 이행하지 않아 사고가 발생해 사고에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법원은 현장 실무자들이 대부분 범행을 인정하고 산업안전으로 형사처벌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적이 없음을 고려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이 판사는 "사고의 중대성을 고려해 벌금형을 선고할 수는 없다"며 "다만 현장 실무자들이 범행의 대부분을 인정하고 있고 동종 사건으로 형사처벌을 받은 적은 없어 실형이 아닌 집행유예를 선고한다"고 했다.
한숨 돌린 경영계…노동계는 "법 취지 훼손" 반발
이번 사건은 대기업 그룹 회장이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첫 사건이다. 대기업 회장에게 계열사에서 발생한 중대재해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판단이 나오면서 경영계는 한숨을 돌리게 됐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이번 사건에서 법원은 상당인과관계와 예견가능성을 철저하게 검토해 무죄를 선고했다"며 "법원이 이러한 판단 기조를 이어간다면 대기업 회장이나 대표들은 중대재해처벌법상 경영책임자에 포함되지 않아 처벌을 피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행 중대재해처벌법은 경영책임자의 개념이 모호해 법원과 검찰의 해석에 따라 기소와 유죄 여부가 달라지는 경향이 많다"며 "법 개정이 없으면 대기업은 기소와 처벌에서 빠져나가고 중소기업만 처벌되는 경향성이 계속 이어지게 될 것"이라고 했다.
최근 대기업 계열사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하더라도 그룹 회장이나 대표이사가 검찰에서 불기소 처분을 받거나 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검찰은 10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에쓰오일 사건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하지 않고 대표를 불기소했고, 법원은 하청 노동자가 사망한 SK멀티유틸리티 사건에서 대표이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노동계는 법원이 중대재해처벌법 취지를 훼손하는 판결을 하고 있다며 강력하게 비판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선고 직후 논평을 통해 "법원이 정 회장이 각종 보고를 받고 지시를 내린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경영책임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결을 내렸다"며 "중대재해처벌법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대기업의 복잡한 지배 구조 속에서 최고 의사결정권자의 책임을 좁게 해석할 경우 기업이 조직 구조를 통해 의도적으로 책임을 분산하거나 회피할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며 "법을 이렇게 해석하고 적용하면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책임 체계를 약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도 "법원이 정 회장의 지휘 정황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경영책임자로 인정하지 않은 것은 중대재해처벌법상 실질적 경영책임자 개념을 법원이 형해화한 것"이라며 "중대재해처벌법의 입법 취지가 실제로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할 권한이 있는 자를 처벌해야만 산재를 끊어낼 수 있다는 것인데 법원이 경영책임자의 범위를 축소 해석해 책임을 현장 관리자 수준으로 끌어내렸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 판결은 앞으로 대기업 중대재해 사건에서 그룹 회장들이 내밀 최우선 면죄부가 될 것"이라며 "법원은 법을 형해화하는 협소한 해석을 중단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대기업들이 경영책임자 개념의 모호성으로 처벌을 피해나가자 추가적인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노총은 중대재해처벌법 개정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노총은 "중대재해처벌법의 취지를 담지 못하는 판결이 나오고 있어 중대재해처벌법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 개선 논의를 적극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정 교수는 "현재 중대재해처벌법은 경영책임자 개념이 모호해 법관의 주관적 개입 가능성이 높고 판결이 일관되게 나오고 있지 못하다"며 "서류 작업을 잘해놓는 대기업은 법망을 피해 가고 중소기업에만 처벌이 가중되는 구조로 산업안전보건법으로 법을 일원화하는 등 제도 개선 논의를 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출처: 이재헌 기자, 중처법 1호, 삼표 회장 ‘무죄’ 선고…“중처법상 경영책임자 아냐”, 월간노동법률, 2026년 2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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