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억 ‘임금체불’에 근로계약 없이 ‘채용내정’ 1년8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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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화물전문항공사 시리우스항공이 지난해부터 노동자 수십 명에게 최소 30억원 이상의 임금을 체불하고 있다. 근로계약을 맺은 노동자뿐 아니라 합격 통보를 받고 채용내정 상태에 놓여 임금은커녕 근로계약조차 체결하지 못한 채 방치된 노동자들도 있다. 단순한 임금체불을 넘어, 사모펀드 인수 뒤 경영 정상화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노동자와 채용내정자 모두 법적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례라는 지적이 나온다. 권리 구제를 위한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새 대주주 오름프라이빗에쿼티도 임금체불
25일 <매일노동뉴스> 취재에 따르면 시리우스항공 노동자 17명은 지난 16일 부산지방고용노동청에 임금체불 진정을 접수했다. 지난해 접수한 1차 진정에도 사태가 해결되지 않자 2차 진정에 나선 것이다. 1차 진정은 직원 80여명에 대한 임금 19억원 체불 혐의로, 관련 재판은 내년 1월 열릴 예정이다.
시리우스항공의 대주주는 지난 7월 변경됐는데도 임금체불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새로운 경영진인 사모펀드 오름프라이빗에쿼티(오름PE)는 인수 당시 체불액 중 소액을 지급했지만, 9월부터 체불이 다시 시작됐다. 수십억 원의 임금을 체불당한 재직 노동자들뿐 아니라 채용내정 상태로 방치된 조종사들의 고통도 2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다.
시리우스항공은 지난해 4월 항공기 조종사 20여명을 채용했다. 회사는 입사일을 여러 차례 미뤘지만, 곧 운항 개시를 위한 면허 취득이 진행될 것이라고 고지했다. “입사를 위해 필요한 교육과 자격을 취득하라”며 “실제 항공기 임대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고도 설명했다. 사용자쪽은 매달 조종사들에게 투자나 지분 인수 관련 내용을 공지해 왔다.
5년 넘는 경력을 가진 박재현(가명) 기장은 더 큰 항공기를 몰아보고 싶다는 포부로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시리우스항공에 지원했다. 그는 국토교통부가 지난해 1월 시리우스항공에 신규 항공화물운송사업 면허를 발급하면서 운항도 순조롭게 진행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이후 실제 운항에 필요한 안전운항증명(AOC) 취득을 위한 항공기 구매 등은 이뤄지지 않았다. 자금 유치에 실패한 탓인지 입사와 항공기 도입은 계속 미뤄졌고, 대표는 결국 올해 7월께 지분을 오름PE에 매각했다.
지원자가 포화 상태인 항공업계 채용 시장에서 이직도 쉽지 않았다. 코로나19 당시 퇴사한 경력직과 신규 입사 희망자들이 대거 몰리면서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박 기장은 “항공사에서 수십 명을 채용하면 수천 명이 지원하는 상황”이라며 “회사를 믿으면서도 구직을 시도했지만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항공업계에서는 면허를 취득한 조종사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방치되는 현실을 ‘비행낭인’이라고 말한다. 구직 기간이 길어지면서 경력 단절과 비행시간 공백은 더욱 커진다. 항공안전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조종사는 최근 3개월 동안 이륙과 착륙을 각각 3회 이상 해야 한다. 비행 경험과 자격 유지를 뜻하는 ‘커런시(currency)’를 유지하려면 비행하거나 교육을 이수해야 하는데, 기업 입장에서는 자격을 유지한 지원자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박 기장은 “공백이 길어지니 지원 자체가 어렵고, 지원을 못 하다 보니 비행하지 않은 시간이 더 길어지는 악순환에 빠졌다”며 “새로운 경영진도 경영 정상화를 고려하지 않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정부가 회사 정상화 유도해 달라”
이처럼 근로계약서조차 작성하지 못한 채용내정 조종사는 10여명에 이른다. 이들은 각종 대출과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임금체불 진정이나 법적 대응을 고민해 보기도 했지만, 해고 통보나 회사로부터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기도 어려웠다. 판례상 채용내정자가 대기한 기간은 임금을 받아야 하거나 최종 합격 통지가 내정자에게 도달하면 근로계약 관계가 성립된다고 보지만, 경직된 채용 시장에서 이들의 바람은 하루빨리 경영이 정상화돼 실제로 일을 하는 것이다.
이들은 사모펀드가 회사 정상화보다는 항공화물운송사업 면허를 보유한 회사를 팔고 수익만 실현하는 ‘엑시트’에 나설 수 있다는 점도 우려하고 있다. 현재 회사에 재직 중인 노동자 25명과 채용내정자 10여명은 사족에 수차례 면담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전 대표이사인 권도균씨와 회사를 인수한 사모펀드 오름PE의 대표로 알려진 최원규씨를 직접 본 적이 없는 직원도 대부분이다.
임금체불은 현재도 이어지고 있지만 오름PE 부대표 신아무개씨는 지난 10월 전라북도와 전주시 등이 주최한 청년 취업 캠프에서 강연하는 등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오름PE의 현 경영진은 과거 MG손해보험 부실투자 의혹이 제기됐던 자베즈파트너스 사모펀드 경영진과 동일한 인물들이다. 자베즈파트너스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친·인척이 설립한 사모펀드로 각종 특혜 의혹을 받기도 했다.
본지와 통화한 오름PE 관계자는 “임금 상환 계획은 있지만 답할 의무는 없다”며 “문제를 해결 중”이라고 말했다.
노동자들이 1년 넘게 방치된 상황에서도 면허를 발급한 국토교통부나 고용노동부의 문제 인식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노동자 권리를 구제하고 경영 정상화를 유도하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얘기다.
직원 김진서(가명)씨는 “직원들이 일할 수 있도록 정부의 관리·감독이 필요하다”며 “정부가 발급한 면허를 믿고 입사한 이들도 상당수”라고 말했다.
국토부 항공정책실 관계자는 “임금체불 문제는 해결되는 것으로 들었다”며 “채용내정 문제 등은 알지 못했다. 살펴보겠다”고 답했다. 부산지방고용노동청은 “최근 2차 임금체불 진정이 접수돼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출처: 정소희 기자, 수십억 ‘임금체불’에 근로계약 없이 ‘채용내정’ 1년8개월, 매일노동뉴스, 2025년 12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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