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대응할수록 늘어나는 신고…‘공공기관 괴롭힘’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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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의 직장 내 괴롭힘 증가율이 민간기업을 앞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공공기관이 민간기업보다 우수한 괴롭힘 대응체계를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역으로 허위 신고를 유발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공공기관의 괴롭힘 증가율을 줄이기 위해선 괴롭힘 취약 근무지를 찾아 예방책을 강화하고 세대 맞춤형 예방 교육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사후 조치 '모범적'인데 괴롭힘 늘어…이유는?
<노동법률>이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공공기관이 민간기업보다 직장 내 괴롭힘 조치 의무 이행률이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이후 2020년부터 2025년까지 6년간 공공기관이 직장 내 괴롭힘 조치 의무 미이행 등으로 고용노동부로부터 과태료 처분을 받은 비율은 0.48%로 민간기업(1.61%)의 3분의 1 수준이었다.
공공기관에서 직장 내 괴롭힘 대응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감사실장 A 씨는 "대부분의 공공기관은 직장 내 괴롭힘 대응이 매뉴얼화 돼 있어서 신고가 들어오면 시스템적으로 움직인다"며 "직장 내 괴롭힘 신고에 대한 대응은 민간기업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문강분 행복한일 연구소 대표는 "공공기관은 민간에 비해 직장 내 괴롭힘 처리 절차가 내부에 명확하게 규정돼 있고 조치 의무도 확실하게 이행하는 경향이 있다"며 "조치 의무 미이행에 대한 낮은 과태료 부과율은 이를 보여주는 지표"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공공기관이 근로기준법상 괴롭힘 조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직장 내 괴롭힘 신고 건수 증가세는 민간기업보다 가파른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법률>이 윤건영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공공기관 근로자의 직장 내 괴롭힘 신고 건수는 2020년 80건에서 지난해 298건으로 4배 가까이 증가했다. 민간기업이 5743건에서 1만6075건으로 약 2.8배가량 증가한 것에 비해 가파른 증가세다. 공공기관은 직장 내 괴롭힘 신고자의 신고 취하율도 15.8%로 민간기업(21.53%)보다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사후 조치 '모범적'인데 괴롭힘 늘어나…이유는?
민간기업보다 공공기관에서 괴롭힘 신고 건수가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장에서는 민간기업보다 수직적인 조직 문화로 억눌려왔던 젊은 세대 근로자들의 불만이 괴롭힘 대응체계가 마련되자 봇물처럼 쏟아져 나온 것에서 원인을 찾고 있다.
A 실장은 "공공기관은 민간기업보다 더 딱딱하고 상명하복의 수직적인 조직 문화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며 "젊은 근로자들이 민간보다 더 불만이 많이 쌓여오던 상황에서 괴롭힘 대응체계가 잘 갖춰지다보니 그간 억눌린 조직 문화에 대한 불만이 신고로 이어져 민간보다 신고가 늘어난 것으로 본다"고 진단했다.
결국 공공기관의 수직적인 조직 문화를 개선하지 않으면 대응체계가 잘 구축돼 있더라도 2차 가해를 포함한 괴롭힘 문제가 반복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사기업에서 공공기관으로 이직한 B 씨는 "그러니까 여자 못 만나지", "우리 아들 게임 설치나 해" 등 상사의 폭언과 업무시간 외 사적 지시가 이어지자 이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했다. 기관의 대응은 절차적으로 완벽했다. 기관은 B 씨를 가해자와 즉시 분리조치해 재택근무 명령을 내렸고, 외부 기관에 직장 내 괴롭힘 조사를 맡겨 가해자에게 감봉 조치를 내렸다.
그러나 B 씨는 사무실로 복귀한 후 '왜 문제를 만드느냐'는 분위기 속에서 2차 가해에 시달리다 결국 퇴사했다.
B 씨는 "기관이 법적인 절차는 정확하게 지켰지만 2차 가해 등으로부터 보호하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며 "법적인 절차 준수에만 매달려서는 유사한 괴롭힘이 계속 발생하고 2차 가해도 만연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A 실장도 "공공기관이 괴롭힘 사건이 발생할 경우 사후적인 대응을 잘 하는 것은 맞지만 그것만으로는 괴롭힘 건수가 줄어들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공공기관이 직장 내 괴롭힘을 줄이기 위해서는 조직 문화 개선도 병행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비선호지 피하려 제도 '악용'하기도…"허위 신고도 잡아야"
일부 근로자들이 공공기관의 직장 내 괴롭힘 대응체계를 악용해 허위 신고를 하는 경우도 발견된다. 선호하는 지역ㆍ부서가 존재하는 공공기관의 순환 근무 특성상 비선호 지역ㆍ부서로 발령받으면 여기서 벗어나기 위해 허위 신고를 활용한다는 것이다.
A 실장은 "순환 근무를 하는 공공기관의 경우 근로자들이 비선호 부서나 격오지에 가면 괴롭힘을 신고하는 비율이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며 "괴롭힘을 신고하면 신고자들을 업무가 편한 부서나 지역으로 이동시키는 사례들이 있어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선호 부서나 근무지의 직장 내 괴롭힘 신고 건수가 비선호 부서나 격오지에 비해 낮다"며 "비선호 부서나 격오지에 배치되면 업무를 하며 발생하는 괴로움을 직장 내 괴롭힘으로 느끼는 비율이 더 높아지는 것 같다"고 했다.
문 대표는 "공공기관이 직장 내 괴롭힘 신고 체계를 잘 마련한 것이 역설적으로 허위 신고를 하는 근로자로 이어지고 있다"며 "근로자들이 괴롭힘 신고에 대한 안전함을 크게 느끼다 보니 괴롭힘이 성립되지 않을 사안에 대해 작은 이익, 불편함이라도 있으면 신고를 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허위 신고에 대한 별도의 통계는 찾아보기 어렵지만, <노동법률>이 윤건영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공공기관에서 신고된 직장 내 괴롭힘 사건 중 위반 없음으로 종결된 사건의 비율은 48.5%로 민간기업(32.3%)에 비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취약 근무지ㆍ세대 맞춤' 예방책 필요
문 대표는 근로자들의 비선호 지역과 부서가 존재하는 공공기관의 특성을 고려해 공공기관이 맞춤형 예방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 대표는 "지금처럼 괴롭힘이 발생한 후에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공공기관의 특성을 반영해 사전에 어느 근무지, 어느 부서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이 괴롭힘에 취약한지를 찾아 맞춤형으로 예방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괴롭힘에 취약한 근무지나 부서를 발굴하고 그들의 고충을 공공기관 본사에서 인터뷰 등을 통해 듣고 선제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근로자들이 업무상 발생하는 괴로움을 괴롭힘이라고 느끼는 비율이 적어질 것"이라며 "이러한 사전 예방책이 직장 내 괴롭힘 신고 건수가 줄어드는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다"고 말했다.
공공기관 관리자의 리더십을 강화하는 것도 해결책으로 꼽힌다. 문 대표는 "구성원들의 괴로움과 고충이 직장 내 괴롭힘으로 번지지 않기 위해서는 관리자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특히 신고 체계가 잘 갖춰진 공공기관에서는 중간에서 관리자가 제대로 역할을 해야 괴롭힘 신고가 줄어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조직 문화 개선 TF와 세대 맞춤형 괴롭힘 예방 교육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A 실장은 "공공기관에서는 수직적인 조직 문화뿐만 아니라 기성세대와 MZ세대의 세대 갈등도 괴롭힘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며 "본사 차원에서 조직 문화 개선을 위해 TF를 운영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세대 차이가 있기 때문에 직장 내 괴롭힘 예방 교육도 근로자 전원을 대상으로 하지 말고 직급별 맞춤형으로 진행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출처 : 이재헌 기자, 잘 대응할수록 늘어나는 신고…‘공공기관 괴롭힘’의 역설, 월간노동법률, 2026년 4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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